하루를 마무리하며... 늙어도 결실하며

 

2026년 10월 15일 목요일 밤에...

 

어제 오후, 한 교회의 장로님께 전화를 받았다. 나를 꼭 만나고 싶다며 사무실로 직접 오시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오늘 오후로 약속을 잡았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장로님은 은퇴할 나이를 훌쩍 넘기신 듯, 감출 수 없이 연로해진 모습이셨다. 10여 년 전 교회 전산 시스템 일로 함께한 뒤로 정말 오랜만에 뵙는 얼굴이었다. 당시 장로님은 교회 IT 총책임자셨고, 나는 그분 밑에서 Volunteer로 시스템 개발과 관리를 도와드렸다.

 

요즘 컴퓨터 기술이 워낙 빠르게 발전하다 보니, 예전처럼 교회 안에 둔 자체 서버(On-premise)만으로는 늘어나는 데이터와 보안을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하셨다. 그래서 요즘 대세인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으로 옮기고 싶으신데, 내가 이미 클라우드로 시스템을 구축해 쓰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직접 보고 싶어 하셨다.

 

우리 시스템이 클라우드 위에서 매끄럽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시며 장로님은 연신 부러워하셨다. 사실 그 교회 IT 팀이 클라우드 전환을 추진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잘 되지 않아, 결국 내게 도움을 청하러 오신 것이었다. 지난번 QR 코드 시스템도 덕분에 잘 쓰고 있다며 거듭 고맙다고 하시는 모습에서, 이번에도 그런 도움을 바라고 계신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솔직히 요즘은 나도 새로운 일을 준비하느라 무척 바쁘다. 교회의 큰 시스템을 통째로 클라우드로 옮기려면 꽤 오랜 기간 온전히 매달려야 하는데, 지금의 내게는 그만한 여유가 없다. 결국 우리 시스템의 작동 방식과 구조를 보여 드리는 것으로 오늘 만남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을 나서시는 장로님의 뒷모습을 보며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아직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면서도, 직접 손을 잡아 드리지 못한 미안함이 가슴 한구석에 남았다.

 

동시에 미국 한인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 떠올랐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나이가 들어도 쉽게 은퇴하지 못하는 구조 속에 살고 있는 듯하다. 젊은 세대는 저마다 삶을 꾸리기에 바쁘고, 교회 같은 비영리 단체는 많은 예산을 들여 외부 전문가를 쓰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결국 장년층 성도들의 재능 기부와 끝없는 봉사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장로님 역시 은퇴 나이를 훌쩍 넘기셨는데도 그 무거운 자리를 내려놓지 못하고 계신다.

 

미국 교회들처럼 전문 인력을 정당하게 고용하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구조가, 우리 한인 사회에는 자리 잡을 수 없는 걸까?

 

씁쓸함과 미안함, 그리고 감사함이 함께 교차하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오후였다.

 

얼마 전 우리 집을 찾아오신 한 장로님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주신 말씀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시편 92:14~15 말씀, (의인은)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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